언젠가 TV에서 꽤 신기한 장면을 보았다.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가 설렁탕 같은 뜨거운 국밥에 설탕을 넣어서 먹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 숟가락이 아니고 거의 반 봉지 가까이 되는 설탕을 듬뿍 뿌리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할아버지는 국이나 밥뿐만이 아닌 모든 음식에 설탕을 늘 듬뿍 넣어서 먹는 습관이 있었고, 일할 때나 움직일 때 혹은 힘들어 쉴 때나 TV를 볼 때도 항상 할아버지 곁에는 가득 찬 설탕통을 가까이 두고 있었다. 밖으로 외출할 때도 설탕을 챙겨나가야 하고 심지어는 잠자는 머리맡에도 설탕물을 두고 잔다는 것이다. 설탕이 귀한 어린 시절 맛보았던 그 달콤한 맛을 기억하며 할아버지는 설탕을 먹으면 온몸의 피로까지 말끔하게 풀린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지 설탕을 사랑하는 설탕 마니아 할아버지의 독특한 이야기일 뿐일까. 우리는 술을 마시고 즐기는 문화, 특히 남성의 음주와 흡연에 대하여 무척 너그러운 문화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물론 건강한 음주문화와 건강을 위한 금연 문화에 대한 강조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 중독성에 대하여는 생각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로 술과 담배는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어 오는 중독성 물질이다. 술과 담배를 포함하여 또한 다른 약물들이나 흡입제 같은 화학물질에 중독되는 물질중독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언제부터인가 도박중독, 성 중독, 일 중독, 인터넷 중독, 종교 중독 등 중독의 대상이 매우 다양해졌다. 심지어 위의 할아버지 같은 사례는 이제 "설탕 중독"이라는 이름하에 커피 중독, 콜라 중독처럼 버젓이 중독의 한 유형을 차지하고 있다. 중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볼 때 알코올의 섭취는 인류가 공기를 통해서 날아온 효모로 인해 발효된 주스를 우연히 먹어 본 것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 한다. 즉 자연 속에 존재하는 당질을 공기에 실려 온 효모가 발효시켜서 생긴 알코올 성분을 처음 먹어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알고는 인류가 그것을 즐기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술은 오래전부터 인류와 가까이에 존재하였는데, 즉 원시인에게는 추위와 기근 그리고 질병이나 분쟁과 같은 현실에 대하여 그들을 달래주던 매우 중요한 물질이었고 게다가 종교와 제의를 위한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 오늘날 현대에서 역시 술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것이거나 사교적 모임과 관련한 것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알코올의 섭취는 언제나 그 오남용의 문제로 인해서 음주의 해로움과 위험성이 지적되어 왔는데, 사실상 술의 남용과 관련한 문제는 오늘날 새로운 문제는 아니며 오래전 고대 문화에서도 술의 잠재적 위험성은 인식되어 왔다. 술의 남용은 중독의 문제로 이어졌고 현대인들에게서 주로 보이는 물질 중독에는 알코올이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중독과 관련하여 처음에는 단지 알코올 중독이나 약을 사용하는 사람이라고만 쓰였을 뿐이지 중독이라는 것 자체가 질병이나 장애의 개념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또한 19세기 전반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중독성 물질은 알코올이었지만, 이후 의학적으로 사용된 마취제의 등장과 함께 아편 같은 마약과 정신 활성 약물들이 출현하면서 남용되는 중독성 물질의 수가 증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도 물질 남용에 대한 많은 의학 기록이 있지만 중독에 대한 사실상의 정신의학적 설명은 DSM초판이 등장했던 1952년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DSM-I에서는 약물중독을 사회 질병 적 인격 장애의 한 측면으로 보는 것 이외에 다른 자세한 설명은 없었고 단지 알코올 중독에 대한 부분이 편람에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1964년 세계 보건기구가 중독과 습관화를 약물의존의 개념으로 대체하기를 권고하였고, 1968년 DSM-II에서는 이 권고에 따라 의존할 수 있는 물질로 대마초를 포함한 여러 화학물질이 포함됐지만 알코올과 담배는 제외되었다. 대신 알코올 중독의 분류에 있어 그 진단 범주가 더 다양하게 확대되어 열거되었다. 1980년에 발표된 DSM-III에서는 물질 사용 장애라는 개념이 소개되었고 물질 의존을 내성과 금단 증상의 문제로 인식하게 되면서 알코올과 담배는 이제 제외되지 않고 여기에 포함되었으며 동시에 알코올 중독은 모든 물질 사용 장애 중 하나로 분류되었다. DSM-IV에 이르러서는 남용 가능성이 있는 물질을 11개로 범주화되어 물질 남용과 물질 의존이 분명하게 구분되었다. 중독에 대한 정신의학적 진단에 있어서 DSM의 가장 최근 개정판인 DSM-IV-TR의 분류에 의하면 술과 담배를 포함한 중독성 물질들에 대한 중독은 물질 관련 장애로 분류되는데, 물질 관련 장애는 물질 사용 장애와 물질 유발 장애라는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물질 사용 장애는 물질 의존과 물질 남용으로 설명될 수 있고, 물질 유발 장애는 물질 중독과 물질 금단 등으로 기술된다. 따라서 DSM에서는 물질 관련 장애에 포함되는 11개의 모든 물질에 대하여 각각 그 의존, 남용, 중독, 금단의 특징들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물질 사용 장애에서 물질 의존은 물질 사용과 관련되어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지만 지속해서 사용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인지적, 행동적, 신체적 증상들을 필수적으로 가진다. 물질 의존의 진단 기준들을 살펴보면 물질 의존은 임상적으로 중요한 장애나 고통을 수반하는 부적응적인 물질 사용 양상이 지난 12개월 사이에 어느 때라도 다음의 진단 항목 중에서 3가지 혹은 그 이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그 첫 번째 진단항목은 내성인데 여기서 내성은 중독 또는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매우 많은 물질을 요구하게 되거나, 같은 양의 물질을 지속해서 사용함으로 그 효과가 현저하게 감소하게 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두 번째 항목은 금단인데 물질에 대한 특징적인 금단증상으로 나타나거나 또는 금단 증상을 완화하거나 회피하기 위해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물질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세 번째는 물질을 원래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사용하거나 훨씬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이다. 넷째 항목으로는 물질 사용을 중단하거나 조절하기 위해서 지속해서 노력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다섯째는 물질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물질을 사용하기 위해, 혹은 물질의 효과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을 말한다. 여섯째는 물질 사용으로 인해서 중요한 사회활동, 직업 활동 그리고 여가 활동을 포기하거나 줄이는 경우이다. 마지막 항목으로는 물질 사용으로 인해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으로 신체적 혹은 심리적인 문제가 야기되거나 악화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다. 물질 사용 장애의 또 하나의 하위 범주인 물질 남용은 반복적인 물질 사용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여 야기하는 부적응적인 물질 사용 양상으로 특징지어진다. 그 진단 기준은 첫째, 반복적인 물질 사용 때문에 직장, 학교, 가정에서의 중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둘째, 신체적으로 해로운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물질을 사용한다. 셋째, 반복적으로 물질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된 법적 문제가 유발된다. 넷째, 물질의 효과로 인해 사회적 또는 대인 관계 문제가 지속해서 또는 반복적으로 야기되거나 악화하지만 물질 사용이 계속된다. 이러한 증상 중 1가지 혹은 그 이상의 항목들이 지난 12개월 동안 나타날 경우 물질 남용으로 진단 될 수 있다. 다음으로 물질 유발 장애에서 하위 범주로 구분되는 물질 중독의 진단 기준에서 나타나는 필수 증상은 첫째로 최근의 물질 섭취(혹은 물질에 노출됨)로 인해 가역적인 물질 특유 증후군이 발생한다. 두 번째는 물질이 중추신경계에 작용해서 생긴 임상적으로 심각한 부적응적인 행동 또는 심리적 변화가 물질 사용 중 또는 사용 직후에 나타난다. 셋째로는 증상이 일반적인 의학적 상태로 인한 것이 아니며 다른 정신장애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물질 유발 장애에서는 물질 금단을 진단할 수 있는 기준들은 첫째, 과도하게 장기간 사용하던 물질의 중단 혹은 감량으로 인한 물질 특유 증후군이 발생한다. 두 번째는 물질 특유 증후군이 사회, 직업 또는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심각한 고통이나 손상을 초래한다. 셋째로 증상이 일반적인 의학적 상태로 인한 것이 아니며 다른 정신장애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금단은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물질 의존과 연관이 있다. 이렇게 물질 관련 장애에서 제시된 의존, 남용, 중독, 금단의 진단들은 각각의 물질들에 적용된다. 즉 알코올과 니코틴을 비롯한 암페타민, 카페인, 대마, 코카인, 환각제, 흡입제, 아편류, 펜사이클리딘, 수면제 혹은 항불안제, 복합물질 등의 관련 장애에는 각각의 장애가 그 각각의 물질의 사용 장애인지 유발 장애인지 또는 사용과 유발의 장애가 모두 포함되는지 구분되어있으며, 또한 각각의 물질 사용 장애가 물질 의존인지 물질 남용인지, 각각의 물질 유발 장애가 물질 중독인지 물질 금단인지가 구분되어있다. 가령 알코올을 비롯한 대부분의 물질 관련 장애는 알코올(혹은 다른 물질들) 사용 장애와 유발 장애 둘 다에 해당하나, 그중 예를 들어 니코틴 관련 장애 같은 경우는 물질 사용 장애의 물질 의존과 물질 유발 장애의 물질 금단에만 해당하고, 카페인 관련 장애는 카페인 유발 장애의 물질 의존에만 해당한다. DSM의 진단기준에 기술되어 있는 중독의 유형으로서는 물질 관련 장애 외에 병적 도박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도박중독이라 부르는 장애로서, 1980년 DSM-III에서 처음으로 충동조절 장애로 분류되었는데 이후 DSM-IV-TR의 진단기준에서는 물질 의존의 진단기준과 유사한 것으로 제시되었지만 여전히 충동조절 장애의 일종으로서 달리 분류되지 않는 충동조절 장애로 구분되어 있다. 그런데 이 두 장애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다양하게 경험하는 다른 중독들은 DSM의 진단기준에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으므로 나머지 중독들은 다른 정신장애들의 진단에 따라 임의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가령 성 중독이나 인터넷 중독은 충동조절 장애 중에서 달리 세분할 수 없는 장애로 포함할 수 있고, 일 중독은 부분적으로 강박성 성격 장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최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게 되는 쇼핑중독에 대해서는 강박적 구매 장애라고 하여 DSM-III-R에서는 달 리 분류되지 않는 충동조절 장애의 예로 포함되었었지만 이후 DSM_IV에서는 제외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분류는 겉으로 명백하게 드러나는 증상들의 특징에 따른 것이므로, 그 모든 중독의 원인에 초점을 둘 때 각각의 중독이 정신장애에 대한 DSM의 어떤 구분이 속하는가는 사실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보다는 어떤 물질이나 대상에 중독되어 그것에 집착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심리적 현상이 다양한 중독의 대상에도 불구하고 모든 중독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중독의 현상은 중독의 특성에 따른 중독자들의 특정 직업이나 특정 연령 등과는 상관없이 다양하게 확산하고 있으며 그 중독의 정도 또한 심각해서 가령 인터넷 중독이 성범죄를 유발하거나, 일 중독이 극심한 우울증과 함께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고, 최근에는 특정 연예인들의 도박중독이 재산과 직업을 모두 잃고 국외에서 방황하는 사태에 이르게 하고 있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심각한 중독의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러한 다양한 중독의 현상 안에서 모두 어떤 대상이나 행동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무엇인가에 대해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공통으로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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