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심리학

참을 수 없는, 풀리지 않는 화(anger)

by 마음 알약 2022. 9. 24.
반응형

우리는 화를 낸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TV만 보거나 컴퓨터 게임만 하는 자녀들 때문에 부모는 화가 나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해주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이 느끼기에 별것도 아닌 것을 두고 소리를 높이고 매를 드는 부모 때문에 화가 난다. 하기야 혼을 내고 매를 드는 부모에게도 화가 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서 비싼 사교육비까지 지불하고 자나 깨나 자식 걱정에 가슴 졸이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참다 참다 매까지 들게 만든 자녀들에게 부모는 화가 치민다. 아내가 끓인 찌개가 너무 짜서 화가 나고, 상여금의 일부를 의논도 하지 않고 써버린 남편 때문에 아내는 화가 난다. 회사 상사의 굴욕스러운 처우에 화가 나고, 친구가 오해해서 화가 나고, 나와 생각이 다른 동료와의 다툼으로 화가 난다.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사이로 새치기하는 얄미운 사람 때문에 화가 나고, 믿었던 애인에게 배반당해서 화가 나고, 그리고 새 옷에 흙탕물을 튀기고 가버린 운전기사 때문에 화가 난다. 우리는 이처럼 화가 나고 화를 낸다. 때때로 혹은 지나치게 자주 화를 낼 때도 있지만 언제나 우리가 화를 내는 것에는 대부분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엄청난 것이든 아니면 사소한 것이든 자신은 화를 "낼 만하기에" 화가 나는 것이다. 화는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냄으로써 어떤 불만이나 불평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다. 즉 화를 낸다는 것은 무엇인가 못마땅하고 마음을 언짢게 만든 어떤 이유로 그것에 대한 불만이나 불평이 성내는 것을 통한 감정적인 표현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화를 내는 것은 그 빈도와 정도의 차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튼 화가 나는 당사자에게는 "정당"한 것이며 그 당위성은 자신을 화나게 만든 어떤 외부적 요인의 부당성에 근거한다. 물론 화를 나게 하는 외적 요인의 부당성에 대한 당사자의 판단이 정당한지 정당하지 않은지 가려져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부분 그 외적 요인이 자신에게 부당하다는 판단을 근거로 이미 화가 나버린 연후의 일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인한 화는 그 이유가 당사자에 의해서든 아니면 외부로부터든 어쨌든 해결되어서 지나가거나 소멸하면 대개는 누그러지거나 풀리게 된다. 그것은 화를 나게 한 상대로부터 사과받았거나 상대의 명백한 잘못이 교정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상대의 부당함에 대한 당사자 자신의 오류가 발견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혹은 상대의 부당함을 당사자가 그저 잊어버리므로 지나가거나 용서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화가 풀릴 때까지 걸리는 기간과 정도의 차이는 역시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요컨대 우리는 화가 났다거나 혹은 화를 낸다고 할 때 일반적으로 그 화는 애초에 화가 났던 그 고조된 감정의 상태로부터는 (최소한 어느 정도의 차이를 감안하여도) 소위 풀린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화를 낸다는 것은 본래의 자신에게 고유한 정당성을 지키려는 방어적 감정으로서 화가 나는 외적 이유나 화를 내는 정도와 빈도가 너무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화가 나는 감정을 표출한다는 것은 사실 그 자체로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떤 상대 때문에 혹은 어느 상황 때문에 생긴 화가 시간이 지나도 풀리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실은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다른 화가 나는 상황에서 지금 화가 나게 된 사건이나 이유와는 관계없이 이전에 화가 났던 일련의 것들을 자신도 모르게 참을 수 없이 모조리 한꺼번에 쏟아내게 된다면 이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어느 드라마에 등장한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은 늦게 들어왔다고 혼을 내는 엄마에 대한 반항심으로 자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고, 엄마는 그러한 무례한 아들의 행동에 대하여 화를 내었다. 거칠게 닫힌 아들의 방 바깥에서 아들의 무례함에 대하여 혼을 내다가 이번에는 방문 안으로 엄마는 들어섰다. 그렇게 엄마에게 대들고 반항하는 애가 무슨 공부를 하겠냐며 커서 뭐가 되겠냐며 다그쳤다. 그냥 좀 엄마의 잔소리가 지나친 것 같아서 듣기가 싫어서 그랬다며 아들은 일단 잘못했다고 엄마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하지 않을 테니 그만 방에서 좀 나가 달라고 했다. 그러나 엄마의 화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남편 복 없는 사람은 자식 복도 없다고, 너도 네 아빠랑 똑같은 사람이라고 아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시집와서 이날 이때까지 자식 하나 보고 살아왔는데 결국은 내가 자식에게도 무시당하는 이런 꼴을 보자고 참고 살아온 것이냐며 정말로 죽고 싶다면서 엄마는 마침내 방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 엄마의 이런 엄청난 화를 부른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또한 이런 경우는 어떤가. 가령 길거리에서 마주치게 된 친구가 자신을 본체만체도 안 하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무슨 일일까 싶어 그 친구에게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았다. 기분이 너무 나쁘고 화가 나서 나중에 그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그 친구는 그때 정말로 다른데 정신이 팔려 자신을 보지 못하였고 전화기는 깜박 잊고 집에 두고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친구의 해명을 통해서 오해는 풀리게 된 것이며 이제 자신이 화가 났었던 원인은 해결된 셈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그 친구가 자기를 무시해서 일부러 피했다는 생각을 지금까지 지울 수 없으며, 생각해 보면 함께 식사할 때나 쇼핑할 때도 은근슬쩍 자기를 폄하하고 모욕하는 말투나 태도가 있었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그것만 생각하면 마음속 저편에서 밀려오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친구를 볼 때마다 화가 나며 어떻게 해서라도 그 친구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자신에게 그 친구에 대한 또 다른 오해가 생겨 불거진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그리 생소하지는 않을 이러한 예들에서 보이는 것은 아마도 화가 나는 외적 요인의 범위를 넘어선 어떤 분노, 즉 달리 어떻게 처리되지 않는 참을 수 없는 화, 상황에 맞지 않는 혹은 지나치게 억제되었던 공격성의 감춰진 표출, 그래도 없어지지 않는 마음속 깊은 곳의 뜨거운 분노이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하거나 임의적인 외부요인에 의해서 촉발되고 그로부터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게 된 것이다. 이는 아주 오래전 내가 기억할 수 없는 내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나의 상처 때문은 아닐까 싶다. 도무지 삭히지 않았던 그 알 수 없는 아픔에 대한 분노, 그것은 아마도 그 아픔을 가진 나에게 화를 내는 상처를 받고 나약한 나 자신의 가장 힘센 표현이 아닐까.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