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상처에 대한 반응으로서 분노는 코헛의 자기 심리학에서 자기애적 격노로 설명된다. 코헛은 자기의 장애와 관련하여 자기애적 상처로 인해 대표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두 가지 반응으로 앞서 논의된 수치심과 더불어 특별히 자기애적 격노를 들고 있다. 코헛에 의하면 자기애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수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수치심이 주로 과대적 자기의 자기애적 욕구에 대한 공감적인 지지와 인정의 결핍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즉 과대적 자기의 과대적이고 과시적인 욕구를 반영해 줘야 할 자기대상의 공감적 기능의 실패로부터 자기애적 상처가 생기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자기구조의 결핍으로 인한 자기의 결함이 수치심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즉 수치심은 어떤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을 정말 형편없고 부적절하며 가치 없게 느끼게 되는 자기의 결함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데, 이러한 자기 결함에 대한 인식은 그처럼 보잘것없는 자신이 거절당하거나 무시당할 것에 대한 공포를 수반한다. 그래서 자기애적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자기의 상처에 대한 그 고통스러운 실패의 현실을 지워 버리기 위해서 종종 분노를 드러내게 된다.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자기의 부적절함과 자기의 형편없고 보잘것없음에 대한 격노, 즉 자기의 결함에 대한 격노인데, 이것은 바로 자기애적 격노이다. 코헛에 따르면 자기애적 격노는 이상화 자기의 위대함, 전능함에 대한 자기애적 욕구가 자기대상으로부터 공감적으로 반영 받지 못하여 생기는 자기의 구조적 결핍으로부터 기인한다. 유아의 자기애적 욕구, 즉 자기를 인정해주는 부모를 이상화함으로써 불안을 줄이고 자기를 확인하려는 유아의 욕구를 부모가 적절하게 잘 반영해 주는 공감적 자기대상으로 기능할 때, 일반적으로 유아가 본래 가지는 건강한 자기 주장성은 성숙하고 균형 있는 자기주장으로 발달한다. 그러나 부모가 유아의 욕구를 최적의 공감적 반응으로 충족시켜 주지 못하게 되면 유아의 자기는 외상적인 자기애적 상처를 입게 되며 그렇게 되면 본래의 타고난 건강한 자기 주장성은 파괴적인 공격성의 형태를 띠는 격노로 나타나게 된다. 코헛은 인간이 가지는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이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는 일차적인 본능적 요소라는 고전적인 욕구 심리학적 입장에 동의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인간의 파괴적인 공격성을 이차적인 심리 현상으로 본다. 즉 유아가 처음에 가지는 자기 주장성은 파괴적인 공격성의 표출이 아니라 자기대상이 제공해 주는 공감적인 반응 환경을 확고하게 요구하고 보장받으려는 표현이다. 가령 엄마가 우유를 준비해 가지고 오는 동안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참지 못해(즉각적인 공감적 반응이 지연되는 것 때문에) 유아가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유아가 견딜 만한 좌절을 겪고 있는 것이며 이는 타고난 인간의 공격성을 드러내는 격노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유아의 자기대상에 대하여 완전한 공감적 반응을 요구하는 초보적 자기의 순수한 자기주장이다. 이처럼 정상적인 자기 주장성으로 드러나는 원초적이고 비 파괴적인 유아의 격노는 유아의 욕구가 적절하게 충족되면 곧 진정된다. 그러나 유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자기대상의 공감적인 실패로 인하여 유아가 자기의 적절한 욕구에 대하여 외상적인 좌절을 반복적이고 지속해서 경험하게 되면 만성적인 자기애적 격노가 자리 잡게 된다. 그렇게 해서 생긴 파괴적인 격노는 어쩌면 평생을 통해서 사소한 일에도 자기가 자기의 상처를 경험하게 될 때마다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코헛은 격노로 나타나는 파괴적인 공격성이 인간이 일차적으로 타고난 요소들이 아니라 자기대상의 공감적 실패로 인하여 이차적으로 나타난 반응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바로 즐거운 자기 주장성이 깨져버린 상처 입은 자기의 부산물이며 따라서 자기구조가 붕괴하는 위협에 대하여 자기가 보이는 방어적 반응이다. 이러한 자기애적 격노의 현상은 자기애의 균형이 깨지는 것에서 기인하는 공격성의 표출로서 일반적으로 인간이 가지는 다른 형태의 공격성과는 다르다. 즉 자기애적 상처로 인해 표출되는 공격성 안에는 자기에게 상처를 준 이들에게 복수하고픈 욕구,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욕구, 그리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상처받은 것을 원상태로 되돌리고자 하는 욕구가 잠재되어 있으며 이는 자기애적 격노의 전형적인 특징들이다. 다른 공격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러한 욕구들의 충동은 자기애적 상처를 가진 이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채 절대로 수그러들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애적 상처를 입은 사람이 가지는 격노는 자기가 공격(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가해자(대상)에게 상처를 입히고 철저히 복수하는 것을 통하여 그 대상을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로 없애버리고 지워버리고 싶은 대상은 감히 자신과 맞서거나 자신을 반대하며 혹은 자신을 능가함으로써 자신에게 상처를 준 실제의 분리된 대상 그 자체가 아니다. 자기의 격노의 적인 보복의 대상은 바로 자기애적으로 인식된 현실 안에서 바라본 자신의 결함인 것이며, 보복을 통해서 지워버리고 싶은 욕구는 바로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려는 충동이다. 따라서 조금의 공감도 없이 아주 철저하게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상대를 훼손하려는 욕구는 사실은 자신의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 끝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자기애적 격노의 현상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숙한 공격성 안에서 경험되는 격노의 적은 자신과 분리된 타인, 즉 외적 대상이다. 반면 자기애적 상처로부터 비롯된 공격성은 그 외적 대상을 향한 공격을 통해서 상처 입은 자기의 결함을 메우려는 욕구의 표출이다. 즉 자기가 인정받고 반영 받기를 바라는 자기애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마다 경험하게 되는 자기의 고통스러운 상처와 자기가 파괴될 것 같은 위협적인 두려움을 격노로 터뜨리게 된다. 이런 점에서 다른 형태의 공격성과는 구별되는 자기애적 격노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대상에 대해 보복하고 그 상처를 보상받기 위해서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냉담함과 무자비함을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가지는 공격성이 자기애적 상처로부터 표출될 때 그 공격성은 가장 위험하고 가장 끔찍하게 파괴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코헛은 지적한다. 그는 자신이 든 사례분석을 통하여 공격성이란 것이 마치 종기처럼 고름을 짜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성의 정자처럼 성교를 통하여 배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확신한다. 예컨대 심한 만성적인 자기애적 격노는 한 개인의 평생 어떤 분출을 통해서도 경감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코헛은 이러한 현상을 개인뿐 아니라 집단의 가장 파괴적인 성향들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면서 특별히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의 복수심에 불타는 파괴성을 자기애적 격노의 역사적인 실례로 들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과 대학살을 왜곡된 다윈주의 안에서 정당화시키고 있지만, 그들의 파괴성은 명백히 자신들의 위대함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전능한 이상적 영웅들에 대한 자신들의 헌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는 원초적인 자기애적 상처로부터 비롯된 집단적 자기애적 격노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즉 집단 안에서 공유되는 과대적 자기와 이상화 자기의 욕구가 그 집단의 위신에 금이 가거나 집단의 가치가 파괴됨으로써 잘 충족되지 못하여 건강한 공동의 포부와 이상으로 잘 발달하지 못하게 되면 집단적인 자기애적 격노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격노는 어떤 집단의 국가적, 대외적 명망에 손상을 입었을 때나 어떤 집단의 종교적 가치가 깨지게 될 때 집단적인 파괴적 공격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는 홀로코스트로 이어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아마도 마녀사냥이나 종교전쟁의 동기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세계의 평화까지도 위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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