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의 좌절은 자기구조를 세우는 내면화의 발달과정에 중요한 요소로서 변형적 내면화를 일으키게 하는 조건이 된다. 최적의 좌절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변형적 내면화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즉 최적의 좌절은 변형적 내면화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심리구조를 세우게 되는 매우 중요한 동기가 된다. 자기대상의 시기적절한 공감적 반응의 실패를 통해서 유아는 자기대상에 점진적으로 실망을 경험하게 되고, 자기대상의 기능들은 변형적 내면화를 통해서 유아에게 점차 현실적으로 된다. 따라서 최적의 좌절은 점진적으로 시기적절하게 변형적 내면화를 일어나게 하여 부모가 없어도 이제는 부모가 해주던 자기대상의 기능(거울처럼 반영해주기, 안심하도록 위로해주고 긴장을 줄여주기, 함께 있어 줌으로 자신감을 강화해주기 등)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유아의 어린 시절에 엄마는 유아를 재우기 위해서 유아를 안고 토닥여 주거나 자장가를 불러주기도 하고 혹은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그 시절의 유아는 잠이 들 때 그러한 엄마의 자기대상 기능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유아가 성장하면서 자신이 잠들 때 필요로 하던 그 엄마의 기능은 이제 자기 자신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자기의 심리구조로 변형되어 혼자서도 잘 잠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응집력 있는 자기의 구축은 바로 이러한 변형적 내면화의 과정, 즉 이전에 자기를 위해 자기대상이 수행하던 심리기능이 내면화되어 점차 자기가 그러한 기능들을 혼자서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어린 시절에 유아가 경험했던 자기대상의 기능이 자기의 자율적인 심리구조로 조금씩 변형되어 이제는 그 기능들을 스스로 담당할 수 있게 되는 응집력 있는 자기의 구조가 구축되는 것이다. 코헛은 변형적 내면화의 과정을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단백질이 생물학적으로 섭취되고 소화되는 과정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구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영양소로서 단백질이 필요하다. 우리의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령 쇠고기나 계란을 먹는다. 그러나 우리가 섭취하는 쇠고기나 계란의 단백질의 분자는 사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과는 다른 물질이지만 우리 몸의 단백질 형성을 위해서 우리는 다른 단백질을 받아들인다. 우리가 쇠고기나 계란을 씹고, 삼키고, 소화하는 동안 그 쇠고기나 계란은 그것들을 구성하는 분자 요소들로 잘게 분해가 되어 아주 천천히 우리의 몸에 맞는 단백질로 조정되고 그렇게 하여 우리 몸의 단백질로 재구성된다. 쇠고기나 계란이 우리 몸에 들어와 섭취되고 소화되었을 때 그것들은 더 이상 쇠고기나 계란 단백질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단백질로 변형되는 것이다. 이처럼 변형적 내면화라는 것은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단백질이 아주 점차 우리의 몸 내부로 받아들여져서 우리 몸의 단백질로 변형되고 그것이 우리의 몸을 지탱하고 튼튼하게 하는 영양소로 쓰이게 되는 것처럼, 자기대상의 기능이 자기의 내부구조로 받아들여져서 자기가 필요한 기능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형되어 적응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기구조가 구축되며 튼튼한 자기를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단백질의 섭취는 쇠고기나 계란을 한 번 먹는 것으로 완전해지지 않는다. 일단 쇠고기나 계란의 단백질을 통해서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얻기는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형성된 우리 몸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해서 단백질의 섭취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구조가 한번 구축되었다 하더라도 생애 전반에 걸쳐 여전히 우리는 자기대상의 기능들이 필요하며 그 기능들의 변형적 내면화를 통해 자기구조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다시금 튼튼하게 강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최적의 발달 환경 안에서 건강하고 응집력 있는 자기가 발달하는 데에는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것이 바로 코헛의 이론에서 자기의 구축과 관련하여 매우 특별하게 희망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자기의 발달 안에서의 보상구조이다. 즉 자기구조의 한쪽 영역에 발달적 결함이 생겼을 때 다른 한쪽 영역의 발달 강화를 통해 그 결함을 보상함으로써 자기의 기능이 회복될 수 있고 따라서 응집적 자기의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의 병리는 이 두 번의 발달 기회를 모두 잃었을 때만 발생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유아기 초기에 자기의 두 축, 즉 포부와 이상의 축들은 동시에 나란히 발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그러나 코헛은 보통 대부분의 경우 과대적 자기는 태어나서 대략 2세부터 4세가 될 때까지 포부의 축으로 먼저 발달하여 통합되며 이상의 축은 그 이후에 6세까지의 발달로 얻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많은 경우에 있어 그러한 발달의 움직임은 특히 남아의 경우 거울 자기대상의 기능을 하는 엄마로부터 이상화 자기대상의 기능을 하는 아빠에게로 옮겨 가는 것이 일반적이며, 여아의 경우 이런 다른 자기대상 욕구들이 같은 한 부/모로 향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발달 노선이 언제나 반드시 동일한 연속선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발달순서와 자기대상의 역할이 바뀌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가장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보상적 시도는 포부의 영역에서 생긴 결함이 이상의 추구를 통해 높아지게 된 자존감에 의해 보상되는 것이지만 그 반대의 보상적 경우 역시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구조의 한쪽 영역에서 일차적 결함이 생기는 가장 주된 원인은 자기대상의 공감적 반응의 지속적인 심각한 결핍 때문이다. 이럴 때 공감적 반응을 받지 못한 한쪽 부모의 자기대상 기능으로부터 결핍된 자기를 보충하고 회복하려는 시도가 대개는 다른 한쪽의 부모로부터의 강화된 공감적 반응에서 이루어진다. 즉 간단히 말해서, 엄마의 자기대상 기능이 유아의 응집력 있는 핵자기를 구축하게 하는 것이 실패했다면 이제는 아빠가 대신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부모 양쪽의 엄마와 아빠가 자기대상으로서 실존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남은 한쪽의 부모가 그 보상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듯이 그러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다른 중요한 사람들, 가령 형제나 자매, 친구, 할머니나 할아버지, 혹은 친척이나 선생님 역시 보상구조에서의 자기대상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이로써 결핍되었던 자기의 어느 한 영역은 회복이 이루어지게 되며 그러한 보상구조를 통해서 자기구조는 다시 형성되기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발달의 보상구조에 있어서 코헛은 두 번의 보상구조 경험의 기회를 말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유아의 핵자기 발달과정에서의 보상구조가 바로 그 보상구조의 첫 번째 기회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전 생애주기를 통해서 자기의 정상적인 발달과정의 각 단계나 시기에서 가질 수 있다. 또한 자기 발달의 보상구조는 흔히 치료의 맥락(자기의 병리와 관련하여 치료자와 환자 혹은 상담자와 내담자)으로 확장될 수 있는데 자기를 견고하게 세울 기회를 한 번 더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코헛이 말하는 보상구조의 두 번째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반드시 치료적 맥락이 아니더라도 전 생애에 걸친 발달적 맥락에서 볼 때, 성인기의 응집적 자기의 지속적인 발달에서 역시 보상구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성인기에 경험할 수 있는 보상적인 자기대상은 현재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실제적인 (아마도 결핍된) 자기대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기능을 한다. 즉 그 자기대상의 기능들을 통해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욕구를 반영 받음으로써 자신을 확인하며, 이상화하고 싶은 욕구가 받아들여짐으로써 불안을 줄이고, 혹은 누군가와 유사하다는 느낌과 함께 소속되어 있다고 느끼고 싶은 욕구가 충족됨으로써 자신감과 힘을 얻게 된다. 이러한 자기대상 관계는 유년기나 청소년기에 만날 수 있는 교사, 멘토 혹은 그룹 리더 등과의 관계를 통해서 일어날 수 있으며, 성인기의 동료, 선배, 혹은 직장 상사 등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자기의 자기 구조를 다시금 지속해서 튼튼히 다지는 기능을 한다. 코헛의 독특한 보상구조 이론은 이처럼 인간의 자기가 기본적으로 보상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발달적 맥락과 치료적 맥락에서) 그 보상구조를 통해서 우리는 평생에 걸쳐 자기를 잘 구축하여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잠재적 가능성의 희망을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다. 이는 또한 정신적 건강과 성숙에 대한 전통적이고 이론적인 관념의 테두리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놀라운 자유를 더해 주기도 한다. 전통적인 이론이나 규범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많은 이들의 심리적 건강과 성숙은 결국 응집력 있는 자기, 구조적으로 온전한 자기를 향한 자기의 보상구조 안에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애성 성격장애1 - DSM의 진단적 이해 (0) | 2022.09.17 |
---|---|
자기구조의 발달결핍으로 인한 자기의 결함(defect) (0) | 2022.09.17 |
공감적 반응과 최적의 좌절 (0) | 2022.09.12 |
유아가 경험하는 대상 2 (0) | 2022.09.06 |
유아가 경험하는 대상 1 (0) | 2022.09.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