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헛은 자기의 병리를 논하면서 자기애적 결함을 가지게 되는 인간의 속성에 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가지는 관계적 삶 가운데서 그 관계로부터 자기가 추구하는 자기의 건강한 구축에 실패한 비극적 인간을 말한다. 코헛이 볼 때 프로이트의 고전적인 심리학적 관점에서 묘사될 수 있는 인간은 쾌락의 원칙에 따라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을 만족시키려 하지만 환경적인 압력과 특히 내적 갈등으로 해서 그렇게 할 수 없는 죄책감에 짓눌린 인간이다. 즉 프로이트의 정신 병리의 원인은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심리 내적 갈등으로 인하여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에서 온다. 그러나 코헛의 자기 심리학은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서 인간에게는 주체적으로 창조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응집력 있는 자기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코헛이 말하는 자기의 병리는 그러한 자기구조를 추구하지만, 자기대상과의 관계적 실패로부터 결함이 있는 자기 존재를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되고 또 그러한 고갈된 자기를 채우고 회복시키려는 비극적 인간의 분투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 자기를 위한 돌봄의 열쇠가 되는 것은 코헛의 자기 심리학에서 거듭 강조하다시피 바로 치료자 혹은 돌보는 이의 공감적인 자기대상의 기능이다. 이는 자기애적 상처를 가진 이들의 과대적 자기를 공감적으로 이해하고 인정해 주며 지지해주는 돌보는 자의 거울 자기대상의 기능과 그들이 이상화하려는 대상으로서 그들에게 충분히 융합할 기회를 주는 돌보는 자의 이상화 자기대상의 기능의 중요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자기대상 기능들은 자기의 관계적 삶의 실패로부터 그 회복을 가져다준다. 따라서 돌보는 이는 자기애적 상처를 가진 이들과의 공감적인 관계적 삶을 통해서 그들의 손상된 자기가 회복되어 다시 건강한 자기구조를 구축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그들의 자기대상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충분한 자기대상의 역할들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감적 수용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즉 앞서 살펴보았듯이 드러난 자기애뿐만이 아니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자기애의 모습들까지 포괄하는 자기애성 성격의 양상들에 대한 세심한 주의와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소심하고 우울하며 자신의 주장을 잘 펴지도 못하고 상처받을 것 같은 관계는 미리 회피하는 이러한 은밀한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이들을 잘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보다 전문적인 임상적 지평이 요구되는 것이다. 물론 은밀한 자기애는 전문적 지식이 없으면 표면적으로 잘 구별되기도 쉽지 않고 심지어는 매우 과묵하며 겸손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으로 비추기 쉽다. 게다가 다른 성격장애에서도 은밀한 자기애의 특성들이 발견될 수 있으므로 이들을 위한 돌봄의 지침을 구체적으로 정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런데도 우선 양극단으로 나타나는 자기애의 범위에 대한 인식 자체를 넓힘으로써 드러난 자기애의 양상들뿐만이 아니라 그 다른 한쪽 극단에 있는 잘 드러나지 않는 자기애의 양상들도 돌봄과 치유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 양극단으로 나타나는 자기애성 성격의 양상들이 과대적, 과시적 성향이든 아니면 소심하고 회피하는 성향이든 간에, 나타나고 있는 양극단의 양상들 그 자체가 결핍된 자기구조로 인해 자기애적 상처를 보호하고 메우려는 방어적 성격들의 표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가령 자기애성 성격에서 드러나는 지나친 자기중심적 태도와 과도하게 표현되는 자신의 과대성과 과시성은 실제 자신의 텅 빈 공허감과 무력감, 그리고 낮은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결핍으로 인한 자기의 결함을 메우기 위해서 방어적으로 나타나는 표현들이다. 만일 돌보는 이들이 의식하게 되는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이들의 표면적인 양상들 그 자체만을 보고 단지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심지어는 비난하고 부인한다든지 그래서 즉각적으로 그것들을 섣부르게 해석하고 교정하려 든다면 이는 자기애적 상처를 가진 이들에게 또 다른 자기애적 상처를 주는 것이 되고 말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이들을 돌보는 것에 있어서 중요하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 방어적 표현들 자체에 대한 피상적 관찰과 이해가 아니라, 그것들이 그렇게 방어적으로 나타나게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그들이 가지는 자기애적 상처의 원인이다. 코헛에게 있어서 자기애적 상처는 유아기의 미숙하고 어린 자기가 부모 혹은 양육자로부터 따뜻한 공감과 사랑(공감적인 자기대상 기능)을 지속적이고도 충분히 받지 못함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한 발달적 결핍은 약하고 깨지기 쉬운 결함이 있는 자기로 귀결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흔히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기애"의 자기도취적이거나 심지어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성향들로 보이는 양상들은 사실은 지나친 자기 사랑이 아닌 심각한 자기의 결함으로 인하여 방어적으로 표현되는 태도들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껏 논의되었던 코헛의 자기 심리학은 재조정된 자기애의 개념과 자기애성 성격장애에서의 자기 결핍에 대한 병인의 함축을 통해서, 자기만을 드러내며 자기의 유익만을 위하는 것으로 보이는 인간의 이기성이나 자기중심성이 아닌, 결함 있는 자기의 심리적 장애와 싸우는 인간의 비극적 속성을 새롭게 드러내 준다. 일반적으로 정상 성격이라고 하는 것과 성격장애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정확하게 구분해 내기란 쉽지 않은 것처럼, 실제로 건강한 자기애와 병리적 자기애를 진단적으로 구분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성격이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는 비교적 지속해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적인 태도나 행동 패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성격장애란 이러한 성격의 패턴이 편향적으로 경직되고 융통성이 결여되어 자신이나 타인에게 많은 불편을 주며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신장애들과는 달리 성격장애는 정상 성격으로부터 그것을 구분하는 정확한 경계선을 찾을 수는 없는데, 이는 정상 성격과 성격장애가 어떤 하나의 연속선상에 놓여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유사하게 정상적 자기애와 병리적 자기애 역시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며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존중하고 자신의 권리를 잘 지키는 건강한 자기애의 양상들과 이러한 양상들이 비현실적 과대성으로 나타나는 병리적 자기애는 서로 정확한 경계 없이 연속선상에서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는 자기애의 어떤 양상들이 병리적으로 구분되는 극단적인 형태를 띤다고 하더라도, 자기애는 원래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이고 건강한 속성이라는 코헛의 견해는 여기에 겉으로 나타나는 병리적 자기애의 양상들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양상들로 나타나는 자기애적 상처로부터 공감적 관계를 통해 다시금 건강한 자기애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공감적인 자기대상의 기능과 역할을 상호적으로 담당함으로써 자기애적 상처를 가진 이들, 다시 말해서 결함이 있는 자기를 가진 이들을 포함하여 더 넓게는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자기의 상처들을 서로 이해하고 돌보는 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필요해진다. 이는 돌보는 이의 공감과 사랑을 통한 자기대상 역할로 인하여 다시금 튼튼한 자기구조를 형성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돌봄의 소망을 갖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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