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성 성격장애는 DSM-IV-TR의 진단적 특성들을 기준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험적으로 개인적, 사회적 상호관계에서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상호작용의 양상에 따라 자기애성 성격의 하위유형들이 구분되기도 한다. Paul Wink가 실시한 경험적 연구는 여섯 개의 MMPI 자기애 척도의 분석을 통하여 과대성-과시성의 요소와 취약성-과민성의 요소가 각각 두 가지의 다른 형태의 자기애, 즉 드러난 자기애와 은밀한 자기애에 관련한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자기애의 두 유형을 구별하였다. 윙크의 이러한 자기애의 구분에 따르면, 드러난 형태의 자기애는 자기애적 과대성으로 인해 자기를 과시하거나 자기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양상이 매우 직접적으로 나타나므로 타인들의 주목과 관심을 받는 것에 집중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 즉 이 유형의 드러난 자기애는 앞서 살펴보았던 DSM-IV-TR의 진단기준이 제시하고 있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윙크가 구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유형인 은밀한 자기애는 드러난 자기애의 특성들에서처럼 객관적으로 잘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표면적으로는 드러나 있지는 않으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무의식적인 자기애적 과대성으로 하여 낮은 자기 신뢰도나 자기 주도성의 결여, 또는 우울함과 소심함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은밀한 자기애를 가진 이들은 외부의 반응에 매우 예민하고 또 그 반응을 염려하며 어떤 일을 주도하는 데에 있어서 자신이 없고 주저하며 불안해한다. 또한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방어적이며 쉽게 상처받는 탓에 외부로부터 수치를 경험할 만하거나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만한 상황은 아예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이 보이는 이러한 양상은 이들 스스로 자신은 "상처받아서는 안 되고, 거절당해서도 안 되며, 못 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되고, 밉보여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자기애가 은밀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기애성 성격을 이렇게 두 개의 하위유형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는 Glen O Gabbard의 연구에서 역시 나타나는데, 그는 앞서 DSM-IV-TR에서 기술하고 있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진단기준과 부합하는 드러난 형태의 자기애를 무감각형 자기애로, 은밀한 형태의 자기애를 과민형 자기애로 각각 구분하고 이 두 가지 유형의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징들을 서로 대비하여 기술하고 있다. 무감각형 자기애의 첫 번째 특성이 타인의 반응에 무관심하여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데 관심이 없는 것이라면, 과민형 자기애는 타인의 반응에 매우 민감하여 타인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하여 예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무감각형 자기애에서는 잘난 체하고 자신들을 드러내며 공격적인 특성이 있다면, 과민형 자기애 성격을 가진 이들은 자신을 억제하며 숨기려 하고 부끄러워하며 자신들을 내세우지 않으려 한다. 세 번째, 무감각형 자기애의 특성이 자신에게 도취하여 있는 것이라면, 과민형 자기애에서는 자신보다 타인에게 주의를 기울인다. 넷째, 무감각형은 관심의 초점이 되기를 요구하는 반면, 과민형은 관심이 초점이 되는 것을 피한다. 다섯째, 무감각형 자기애에서는 송신기만 있고 수신기는 없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내세워 말하려고만 할 뿐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과민형 자기애에서는 심지어 경멸이나 비난의 증거를 찾기 위해서까지 타인의 말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인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무감각형 자기애를 가진 이들은 타인에 의해 상처받았다는 느낌이 유난히 둔감하다고 볼 수 있지만, 과민형 자기애를 가진 이들은 쉽게 상처받고 쉽게 수치를 느끼며 모욕감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가바드는 그가 제시하고 있는 두 유형의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성들에 대한 이러한 구분을 통하여 DSM-IV-TR의 진단기준들이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연속선상의 한 부분인 드러난 무감각형 자기애만을 자기애성 장애라고 제시하고 다른 한쪽 부분인 과민형 자기애가 드러내는 자기애성 장애의 양상은 가려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DSM-IV-TR의 진단기준들에 드러난 자기애의 특성들만이 제시된 까닭은 앞서 DSM-IV-TR의 진단체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듯이 아마도 DSM의 정신장애 분류체계의 구조적 원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DSM-IV-TR의 정신장애 분류는 장애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의 기술적 특징에 근거해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외형적이고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에 의해 장애를 구분하며 분류한다. 따라서 자기애라는 장애의 같은 원인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드러난 혹은 무감각형 자기애성 성격의 특성들은 그것들이 표면적으로 뚜렷하게 구별될 만큼 드러나는 증상들을 외형적으로 보이고 있지만, 은밀한 혹은 과민형 자기애성 성격의 특성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고 때때로 다른 성격장애들의 특성과 부분적으로 혼동될 만큼 표면적으로 자기애성 성격이라고 진단하고 평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DSM에서는 드러난, 무감각형 자기애만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로서 진단적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은밀한, 과민형 자기애성 성격의 특성들은 다른 성격장애들의 특성들, 특히 회피성 성격장애의 특성들과 부분적으로 중첩되고 있다고 느껴지며, 만일 과민형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성들이 DSM-IV-TR에서 진단적으로 분류된다면 가장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회피성 성격장애에 제시된 진단적 특성들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Kelly A. Dickinson and Aron L. Pincus의 연구는 자기애성 성격에 대한 윙크와 가바드의 구분을 토대로 두 가지 유형의 자기애성 성격을 과대적 자기애와 취약한 자기애로 구분하고, 은밀한 과민형 자기애, 즉 취약한 자기애와 회피성 성격장애의 특성들의 유사성을 들어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진단적 딜레마를 지적하였다. 즉 자기애성 장애의 이러한 두 유형을 인지하지 않음으로써 취약한 유형의 자기애는 진단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자기애성 병리가 될 위험이 있거나 또는 회피성 성격장애 같은 다른 성격장애로 잘못 진단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회피성 성격장애의 특성들에 있어서 회피성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은 무엇보다도 타인과 가까운 관계로 발전되는 것에 대하여 부끄럽고 두려워하며, 대인관계 안에서 모욕받거나 거절당하거나 당황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 관계를 피한다. 취약한 자기애 역시 유사한 특성을 가지는데, 취약한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이들도 중요한 대인관계에서 불안함을 나타내며 관계를 회피한다. 그러나 디킨슨과 핀쿠스는 주목하기를, 회피성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의 전형적인 회피가 사회관계에서 "타인"으로부터 자신이 거절당할 것 같거나 사회적으로 "타인"에게 자신이 부적절한 영향을 미칠 것 같은 두려움에서 오지만, 취약한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이들이 보여주는 관계 회피는 타인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 때문에 얻게 되는 실망과 수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이들에게 두려움은 회피성 인물들처럼 단지 "타인"들이 자신들을 좋아해 주는지 아닌지, 자신들을 받아들여 주는지 아닌지 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칭찬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것이며 나아가 그럴 경우 그 실망과 수치를 참지 못하고 "자신"들이 엄청난 상처와 분노까지 경험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진단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형태의 자기애 구분을 인정하고, 진단기준으로 아직 기술되고 있지 않은 은밀한, 과민형 혹은 취약한 자기애를 회피성 성격장애와 같은 다른 성격장애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가령 취약한 자기애를 회피성 성격장애로부터 구분하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두 장애에 유사하게 나타나는 회피의 밑바닥에 각각 그 회피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욕구와 두려움이 잠재해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취약한 자기애성 성격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 되는데, 이는 분명 드러난, 무감각형 혹은 과대적 자기애성 성격과 그 병리적 원인을 공유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취약한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대한 진단적 기준을 세우는 일은 결국 두 형태의 자기애가 공유하고 있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원인을 확인하고, 병리적 자기애로 인한 고통과 수치를 방어하거나 자존감을 유지하고 조절하는 시도와 방법이 그 두 형태의 자기애성 성격에서 어떻게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가를 구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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