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의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당연히 먼저 결핍된 영양분을 보충하고 섭식을 회복시켜서 신체적 건강을 향상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나, 체중 증가나 체중감소 같은 체중의 회복으로 치료의 목적을 좁게 잡는다면 그 치료행위 자체만으로는 섭식장애라는 심리 장애를 치유하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와 상호적으로 보다 근원적인 심리 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가바드는 섭식행동 그 자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치료자의 역할은 섭식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증상들을 반드시 변화시켜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을 받아들여 주고 이해해 주고, 또한 그들이 어떻게 해서 이러한 장애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관심을 가지고 공감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의 변화는 때때로 그런 이해에 수반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천천히 자신이 느끼는 대로 자신을 느끼도록,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도록, 그리고 자기를 있는 그대로 스스로 놔두도록 허용하기 시작했다면, 이것이 자신을 좀 더 받아들이고 자신을 좀 더 좋아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시작이 된다. 즉 이는 바로 손상된 자기의 회복의 표현 들일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자기 심리학이 섭식장애의 치료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 보인다. 자기 심리학의 이론적 틀 안에서 섭식장애를 자기애성 행동장애의 하나로 볼 때 그 원인은 자기애적 자기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자기대상의 공감적 기능의 실패로 인해 가지게 된 자기의 구조적 결핍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섭식장애를 치유하고 돌볼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바로 자기의 구조적 결핍을 메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된다. 섭식장애를 가진 이들이 경험하는 자기의 결함을 메울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길은 결국 코헛이 거듭 강조하는 것처럼 그들이 가지는 거울 자기대상 욕구와 이상화 자기대상 욕구 혹은 쌍둥이 자기대상 욕구에 공감적으로 응답하여 그들이 자신들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스스로 긴장을 잘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바로 그들의 건강한 자기구조가 새롭게 다시 구축되도록 돕는 것이 된다. 섭식장애에서 음식은 실망과 좌절로 돌아온 자기대상 욕구를 다시 충족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이며, 그렇게 음식으로 방향을 돌림으로 해서 섭식 장애자들은 자기대상 욕구를 부정하고 그로부터 더 상처받는 것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실패한 자기대상 기능이 음식으로 다시 채워져 새로운 구조가 자기에게 세워진 것 같지만 실은 별로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음식은 자기대상 반응을 제공해 줄 수 없으며 그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자기 구조를 새롭게 구축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헛은 이러한 그들의 해결책이 자기의 결함을 메우는 그 어떤 심리구조도 구축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영구적인 것도 아니며 본질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실제 공감적으로 이해해주고 지탱해주는 치료자의 자기대상 기능을 통해서 그들은 이제 이러한 자기대상의 대체물(음식)을 포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성 섭식장애의 치료에 대하여는 조금 특별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는데, Sands는 두 가지로 중요한 치료적 제안을 하고 있다. 첫째, 먼저 치료자는 많은 여성 섭식 장애자들의 좌절된 과시주의적 욕구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신체적 외모나 타인을 돌보는 것 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과시주의를 표현하는 데서 오는 그들의 수치심을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들의 신체에 대한 자존감은 문화가 주는 여성의 몸에 대해 왜곡되고 이중적이고 부분적인 거울 반응에서 오는 것인데 그들은 이에 특별히 취약하다. 따라서 치료자는 전체 신체-정신 자기를 가지도록 용기를 줘야 한다. 신체 자기의 부분들에 응답하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하며 신체적 외모의 수준에서 해석하는 것은 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대신 환자들의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에 대해서 코멘트하는 것이 좋은데, 이는 치료자가 그들의 전체 자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그들에게 알도록 하는 것이고 감정 상태와 신체적 필요를 구분해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과대적이고 과시적인 경험을 둘러싸고 있는 그들의 감정 상태를 치료자가 잘 조율하고 있는 것이며, 그들에게 그러한 경험을 자신의 전체 자기 구조에 통합하도록 돕는 것이다. 둘째로 치료자는 많은 여성이 사회가 여성을 평가 절하했기 때문에 적절하게 이상화할 수 있는 여성 자기대상을 가지지 못해 왔다는 것과 또한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이상화 자기대상이 주는 기능들을 여전히 만성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치료자가 여성이라면, 치료자는 여성 섭식 장애자들에게 언제든 어떻게든 그들이 필요로 할 때 치료자를 고요함, 힘, 완전함의 모델로서 이상화하도록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이 치료자를 평가절하하는 것 역시 때때로 자신들의 이상화 욕구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이상화 욕구를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그렇게도 이상화하고픈 인물이 과거의 경험처럼 지금 자신들에 대해 실망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의 좌절된 욕구를 명백히 반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상화 욕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과도한 찬사에 대한 치료자 자신의 불편함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치료자 안에 있는 과대성으로 인해 이상화를 피하거나 혹은 그들의 이상화를 적대감에 대한 방어로 해석함으로써 그 이상화 과정을 좌절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거식증과 폭식증으로 나타나는 양상들은 부서지고 결함이 있는 자기를 응집력 있게 통합하기 위해 결핍된 자기구조를 메우려는 이들의 고통스러운 몸부림이며 그들에게 음식은 자신이 갈망하는 자기대상 욕구를 대신 채워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기대상의 대체물일 뿐이다. 음식이 해주는 자기대상의 가짜 역할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을 성공적으로 잘 통제하고 조절하고 있다고 느끼며 그래서 그들은 거식하고 폭식하고 있을 때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안도감을 가진다. 따라서 치료자나 돌보는 이가 제공하는 자기대상 기능은 섭식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치료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코헛이 강조하듯, 우리가 모두 건강한 자기를 구축하고 또한 그러한 자기를 응집력 있게 늘 유지하고 지탱하기 위해서는 평생 자기대상이 필요하다. 즉 응집력 있는 건강한 자기는 한번 구축되었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특별히 섭식장애가 재발하거나 만성적으로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의 자기가 다시 건강하게 구축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또한 그러한 자기가 늘 유지되도록 평생 그들이 건강한 자기대상과 자기대상 환경을 잘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 심리적 힘이 필요하다. 치료자나 돌보는 이의 역할은 아마도 그러한 힘이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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