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헛의 이론과 치료적 방법론에서 가장 근본적인 토대로 제시되고 있는 공감은 자기애적 자기의 발달과 자기애적 상처의 치유를 위한 자기-자기대상 관계에 있어 매우 중심적 역할을 한다. 자기대상이 적절하게 기능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감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코헛은 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초기 논문에서 대리적 내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롭게 공감을 정의하면서 타인의 감정과 사고, 경험을 그들의 내부 세계로부터 대리적으로 관찰하는 것에 의거한 내성적 방법으로서의 공감을 강조했다. 그는 기존의 자유 연상이나 저항의 분석과 같은 프로이트의 전통적인 정신분석 방법론을 넘어서서 공감의 내성적 방법을 정신분석적 관찰의 본질적인 요소로 보았다. 즉 대리적 내성으로서의 공감 안에서 치료자 혹은 돌보는 이는 타인의 경험을 그들의 내부 세계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며, 치료자 자기 생각과 판단을 가지고 그들을 보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그들의 경험 안으로 몰입시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코헛은 대리적 내성으로서의 공감을 환자의 심리적인 정보를 수집하는 도구로서 치료적 상황에서 사용되는 관찰의 형태라 보고 있다. 여기에서 공감은 단지 타인의 내적 세계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에 몰입하여 자신을 조율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공감적 이해는 타인이 주관적으로 경험한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환자의 복잡한 내적 심리상태를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치료자의 능력을 일컫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공감적인 이해 그 자체가 치료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환자에게 전달되어 그들이 이해받는 느낌을 경험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치료적 행위에 대한 하나의 양식이 된다. 다시 말하면 공감은 그 자체가 치료적이라기보다는 성공적인 치료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코헛은 치료자와 환자와의 자기-자기대상 관계 속에서 치료자는 먼저 환자의 자기대상에 대한 욕구의 표현을 공감적 이해를 가지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일반적으로 환자에게 최소한으로 응답하는 치료자의 수동성과 중립성이 당연시되는 기존의 전통적 분석의 분위기는 인간으로서 환자가 가지는 기본적인 자기애적 욕구를 엄청나게 박탈하는 것이라고 코헛은 비판한다. 즉 치료자의 중립적 자세로 보이는 경직적이고 인위적인 태도 혹은 엄격한 감정적인 유보의 태도는 코헛이 생각하는 진정한 중립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코헛은 인간적인 따뜻함을 가지고 환자의 감정을 친절하게 받아주고 반영해 주는 것을 통해서 깊이 참여하는 치료자의 적절한 공감적 반응성이 분석과정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보고 있다. 환자가 치료자를 향해 가지는 거울 자기대상 욕구, 이상화 자기대상 욕구, 그리고 쌍둥이 자기대상 욕구에 대하여 섣불리 판단 혹은 비난하거나 훈계하는 대신에 그것들을 조용히 그리고 가슴 깊이 이해하고 경험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환자의 주관적 현실로 들어가 몰입하는 대리적 내성으로서의 공감적 태도가 환자들에게 지나친 사랑과 친절을 제공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치료자가 단지 따뜻하게 대한다거나 친절하게 반응해 주는 것으로는 치료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고 코헛은 지적한다. 코헛은 자신이 말하는 공감이 가령 연민이나 애정과 같은 특정한 감정과 연관된 것도 아니고 직관과도 상관이 없는 것이며, 또한 공감의 대리적 내성이 언제나 정확하고 완전한 것도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코헛의 공감의 개념은 코헛이 단지 환자의 어린 시절에 충족되지 못했던 자기애적 욕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과 따뜻한 사랑을 통해서 환자를 치료하려 한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즉 치료자는 공감적인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충분한 사랑과 수용을 줌으로써 지나치게 환자에게 만족을 주게 되고 이는 바로 환자에게 교정적 정서 경험을 제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정적 정서 경험이란 정신분석적 치료과정에 필요한 기본적인 원칙으로서 Franz Alexander가 제안한 개념인데, 이는 치료란 기본적으로 지적인 통찰만으로는 불충분한 것이며 무엇보다도 반드시 환자의 감정적인 체험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즉 교정적 정서 경험은 과거에 해결할 수 없었던 환자의 심리적인 외상의 경험을 치유하기 위해서 치료자가 제공하는 보다 우호적인 정서적 환경에서 환자가 자신이 그 경험을 다시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이전의 외상적 경험들에 대한 교정적 체험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치료자의 따뜻하고 공감적인 태도를 통해서 내담자는 억눌렸던 과거의 아픈 경험을 치료자에게 표현하게 되고 그 경험을 현재의 공감적인 치료적 상황에서 다시 경험하게 되면서 이전의 외상적 경험이 수정되고 치유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정적 정서 경험의 개념은 인위적으로 치료를 조작하는 것이라 하여 당시의 1950년대의 정신분석적 분위기에서 매우 혹독하게 비난받았으며 정신분석적 치료과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코헛의 공감의 개념은 바로 그러한 교정적 정서 경험의 또 다른 방식이라고 비판받기도 했는데, 코헛은 공감적 환경 안에서 교정적 정서 경험이 일어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그것은 사실상 자기-자기대상 관계가 구축되는 치료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므로 매우 유용한 경험이라 본다. 그러나 코헛은 주장하기를 치료의 목표는 환자의 자기애적 욕구들을 사랑과 수용을 통해서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지 그러한 욕구들을 충족시켜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욕구들에 대한 반영과 관용 역시 분석이나 상담에서 잠정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분석가는 반드시 그러한 욕구들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반영해주고 받아들여 줌으로써 환자에게 교정적 정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진정한 치료의 목표는 그러한 관용이 아니라 그 관용을 통해서 만들어진 공감적 환경에서 치료자가 얻게 된 통찰에 따라 그러한 욕구들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코헛은 강조한다. 즉 교정적 정서 경험은 환자 자신이 치료자로부터 공감적으로 깊이 이해받고 있다는 경험과 그러한 공감적 이해에 따른 치료자의 통찰이 주는 견딜만한 최적의 좌절 경험을 통해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환자의 자기애적 상처, 즉 자기의 결함이 교정되는 기회와 따라서 건강한 자기구조를 새롭게 구축할 기회를 그들에게 가져다준다. 이렇게 볼 때 코헛은 교정적 정서 경험이 당연히 성공적인 정신분석을 가져오게 하는 결과를 줄 수 있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정적 정서 경험을 성공적인 치료를 위한 원칙이라고 고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해 (0) | 2022.11.30 |
---|---|
섭식장애의 치료와 돌봄 (0) | 2022.10.12 |
자기의 장애로서의 섭식장애 - 여성의 자기 결핍 (0) | 2022.10.10 |
자기의 장애로서의 섭식장애 - 자기의 결핍 (0) | 2022.10.07 |
섭식장애의 이해 - 폭식증(신경성 대식증) (0) | 2022.10.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