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양은 28세의 미혼 직장여성으로 자신의 식성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상담받으러 왔다. K양은 4남매 중 셋째로 어릴 때부터 튼튼했고 몸의 상태가 좋아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더 받기도 했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육상선수를 했으며 피겨스케이팅에 흥미가 있어서 중학교 때에는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지방대회에서 입상까지 하였다. 점점 더 피겨스케이팅 훈련에 시간과 노력을 쏟게 되고, 결국은 피겨스케이팅의 특기생으로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서 지방에서 서울의 고등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전학해 온 새 학교에서 그녀는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었으며 교우관계도 좋고 공부도 잘하였으며 새로운 코치 선생님 밑에서 훈련받으며 열심히 피겨스케이팅을 연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몸무게를 좀 줄여보지 않겠느냐는 코치 선생님의 제안에 자극받은 K양은 엄격한 운동 프로그램과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추가로 스케이팅 연습을 했고 에어로빅하러 다녔으며 다이어트를 위해 고기도 피하고 디저트도 먹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도 점점 소원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기숙사에서 보내던 1년 동안 K양의 몸무게는 58kg에서 45kg까지 줄었고 월경도 불규칙하게 되었다. K양이 여름방학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그녀의 몸을 보고 무척 놀랐고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갔지만 치료받기를 거부하였다. 방학에 집에 있으면서 그녀는 학교에서 했던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계속하려고 노력했지만 식습관이 변하게 되었고 식욕을 통제하기 위해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가끔 한 번씩 부모님이 잠자리에 든 후 몰래 밤늦게 한 박스의 과자와 몇 통의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먹기 시작하였다. 학교로 돌아온 후에도 일주일은 다이어트를 하고 주말에는 과식하곤 했다. 결국 몸무게는 점차 늘어났고 고등학교 3학년 2학기가 마칠 무렵에는 56kg가 되었고 9개월 동안 멈췄던 월경도 다시 시작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K양은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에 특기생으로 입학하게 되었고 공부는 잘했지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K양의 몸무게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1학년 가을에는 68kg까지 몸무게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겨울방학에 집에 와서도 주말에 과자나 스낵을 먹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다. 몸무게가 더 늘어날까 봐 두려워 결국은 과식하고 나서 구토하기로 결심하였고, 또 필요하면 설사약을 사 먹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과식 습관이 시작되었고 지난 10년 동안 일주일에 몇 번씩 구토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 때는 주로 주말에 날을 잡아 초콜릿과 과자 그리고 아이스크림 등을 잔뜩 사 와서 TV를 보면서 그것들을 대략 1시간 만에 다 먹어 치웠다. 또 그것으로 모자라면 냉장고에 남아 있는 것까지 모두 먹어버렸고, 그러고 나서 약을 먹거나 구토했다. K양은 그러한 자신의 혐오스러운 행동을 부끄러워했고 그런 짓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곤 했지만, 곧 2주도 안 돼서 다시 과식하게 되었고 과식하지 않을 때는 또한 악착같이 다이어트를 하려 애를 썼다. 현재 그녀의 몸무게는 65kg 정도 되었다. K양은 자신의 먹는 문제와 몸무게에 대한 걱정 때문에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폭식증에 대한 DSM-IV-TR의 진단기준들은 첫째로 폭식이 계속 반복되는 일화가 있고 그 폭식의 일화는 다음의 두 가지 특징들로 나타난다. 그 특징들의 하나는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 동안(예를 들면 두 시간 동안)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유사한 시간과 조건에서 먹는 양보다 분명히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다(진단 기준 A1). 이 경우 전문가는 그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게 된 주변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가령 특정한 기념 파티나 연회, 혹은 휴일 같은 경우에 하는 식사는 일반적으로는 과도한 식사량이라도 정상을 고려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일정한 시간이란 일반적으로 2시간 이내의 제한된 시간을 가리키지만 이 기간에 일어나는 폭식이 반드시 한 장소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같은 일정한 시간 동안이라도 한 식당에서 폭식하기 시작해서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폭식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온종일 적은 분량의 음식을 계속 먹는다고 해서 그 경우를 폭식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반복되는 폭식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폭식의 일화가 나타나는 동안은 먹는 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먹는 것을 멈출 수 없거나 또는 무엇을 얼마나 먹을 것인지 조절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진단 기준 A2). 그래서 폭식증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먹는 문제를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감추려 하기 때문에 폭식은 일반적으로 가능한 한눈에 띄지 않게 비밀리에 일어난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대개 빠르게 음식을 먹어치우며 그러한 폭식은 위가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정도가 될 때까지 지속된다. 그런데도 폭식에 저항하는 데 어려움을 가지며 폭식을 멈추는 조절 능력의 상실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두 번째 진단기준은 폭식 후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해 스스로 구토를 유도하거나 설사약이나 이뇨제 혹은 관장제 등 기타 약물을 남용하거나, 금식 또는 과도하게 운동하는 것과 같은 부적절한 보상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진단 기준 B). 폭식증이 있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들의 폭식을 보상하기 위한 시도를 하는데, 그 시도 중 가장 흔한 방법이 바로 폭식 후 손가락이나 기구를 사용해서 스스로 구토를 유도하는 것이다. 구토는 폭식 후 신체적 불편함을 없애주고 체중 증가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는 즉각적인 효과가 있어서 일부의 경우에는 구토 그 자체가 목표가 되기도 한다. 또한 다른 설사약들을 사용하기도 하고 온종일 혹은 그 이상으로 금식하기도 하며 때로는 일상의 다른 활동에 지장을 줄 만큼 지나치게 운동하기도 한다. 셋째는 이러한 폭식과 그에 따르는 부적절한 보상 행동이 평균 3개월 동안 일주일에 적어도 2회 정도씩은 일어난다(진단 기준 C). 넷째, 체중과 체형이 자기 평가에 지나친 영향을 미친다(진단 기준 D). 즉 자기를 평가하는 일에 있어서 체중과 몸매를 지나치게 강조하며 자신의 자존감을 결정하는데 체중과 몸매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폭식증의 마지막 특징으로 이러한 장애가 거식증의 일화가 있는 동안에서만은 일어나지 않는다(진단 기준 E). 다시 말해서 폭식증을 가진 사람들 역시 체중이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들의 신체에 만족하지 못하고 체중이 감소하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거식증이 있는 사람들과 매우 유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식증의 일화가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만 그러한 장애가 발생하였을 때는 폭식증이라 진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식증의 진단기준에서처럼 폭식증에서 역시 DSM에서는 좀 더 분명한 진단을 위하여 다음의 두 형태로 세분된 폭식증의 하위 유형들을 덧붙이고 있다. 첫 번째 형태는 설사약 사용형으로서 폭식증의 일화가 현재 일어나는 동안 규칙적으로 스스로 구토를 유도하거나 또는 설사약, 이뇨제, 관장약을 남용하는 경우이다. 두 번째의 형태는 설사약을 사용하지 않는 설사약 비 사용형으로서 폭식증의 일화가 있는 동안 금식이나 과도한 운동과 같은 부적절한 보상 행동은 하지만, 규칙적으로 스스로 구토를 유도하거나 설사약, 이뇨제, 관장약을 남용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 경우를 말한다. 폭식증의 의미를 그 어원을 통해서 살펴보면 "bulimia"는 그리스어 "boulimia"에서 유래한 말로써 "bous"는 황소를, "limos"는 배고픔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폭식증이라 붙여진 이름은 황소처럼 엄청나게 많이 먹는 식욕이나 그 섭취의 엄청난 정도를 뜻하는 말에서 온 것이다. 그래서 폭식증은 말 그대로 일정한 시간 동안 보통 사람보다 비정상적으로 음식을 매우 많이 섭취하는 폭식 행동에서 그 대표적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폭식 행동 후에는 그렇게 섭취한 많은 양의 음식을 제거해 내는 여러 가지 행동이 반드시 반복적으로 뒤따르게 되는 것이 폭식증의 대표적인 또 하나의 특징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는 많은 양의 폭식을 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필요한 양보다 많이 먹었다고 느끼게 되어 습관적으로 그것을 비워버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전형적인 폭식증의 양상들을 보여주는 K양의 사례에서처럼 또한 폭식증은 체중만으로 그 장애의 여부를 진단할 수 없다. 즉 폭식증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정상체중보다 많은 과체중일 것이라고 판단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폭식증에 당연히 저체중인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근거도 없다. 오히려 폭식증을 가진 사람의 체중은 약간의 과체중과 저체중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도 일반적으로는 정상 체중의 범위에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점에서 거식증과 구별된다. 폭식증은 또한 K양의 사례에서 부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고 음식을 심하게 통제하는 거식증으로부터 발전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들은 다양한 음식으로 정상적인 식사를 하기도 하고 혹은 끊임없이 지속해서 심한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어느 쪽이라도 먹는 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이들은 늘 폭식과 제거라는 반복 행동을 통해서 음식이라는 적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조절할 수 없는 폭식이 일단 시작되면 폭식을 하는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음식을 마련하고 도무지 멈출 수 없이 모든 음식을 거침없이 먹어 치운다. 이는 아마도 폭식 중에는 음식이 마치 마취제처럼 작용하면서 먹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폭식 후에 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끔찍한 수치심과 또한 그러한 폭식이 불러올 체중 증가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은 결국 폭식으로 인한 손상을 마치 마술처럼 없애는 제거 행동으로 이어지게 한다. 이러한 반복적 행위는 처음에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시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행동이 되어 버리고 그러한 반복적 폭식과 제거의 행동이 자기 삶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날마다 오늘은 폭식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해 보지만 곧 폭식에 대한 안정감과 편안함의 유혹에 빠져들게 되어 번번이 그날의 결심은 실패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그러한 자신을 경멸하고 수치스럽게 느끼는 고통스러운 삶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반복적인 폭식과 구토는 역시 여러 가지 심각한 신체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데, 치아 법랑질의 손상, 불규칙한 월경 혹은 무월경이 나타날 수 있고 심하면 식도 손상, 위 파열, 심부정맥 등의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특별히 설사약을 사용하는 폭식증의 경우는 수분 및 전해질 장애의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기도 하다. 게다가 폭식증이 우울증을 동반하게 되면 긴장감, 무기력감, 실패감, 자기 비하적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며 자해나 자살을 기도하는 경우도 종종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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