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양은 19세로 발레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는데 너무 몸이 말라서 부모님의 강요로 인해 병원에 오게 되었다. 그녀는 발레에 오랫동안 흥미를 가져왔고 8세에 선생님으로부터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14세부터는 국립발레단의 단원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5세 때부터 과식한 느낌이 들면 구토하기 시작하면서 먹는 일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것은 발레선생님에게 칭찬받으려는 마음에서 악착같이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하면서 생기게 된 일이다. 지난 3년 동안 W양은 하루에 한 번 저녁에 폭식하고 나서 스스로 토하는 일을 해오게 되었다. 그녀는 부모님이 잠자리에 든 후 밤늦게 케이크를 수십 개씩 먹거나 또는 아이스크림을 몇 통씩 먹곤 하였다. 그녀의 부모님은 딸의 식성에 문제가 있다고 미심쩍어했으나 정작 그녀 본인은 그것을 상담받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완강하게 부인하였다. W양은 15세 때 키가 174cm였고 16세 때 최고 몸무게는 약 55kg이었으나 본인 스스로는 살이 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하여 지난 3년간 그녀의 몸무게는 45kg에서 47kg 정도였다. 그녀는 자신이 발레를 하는 사람으로서 규칙적으로 운동했고, 폭식할 때를 제외하고는 지방질이 높은 음식이나 단 것은 피해왔고 엄격하게 채식주의자로 살아왔다. 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마음 편하게 먹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상황을 가급적 피하려고 했다. 결국 이러한 식사 문제는 W양의 사회생활을 위축시키기도 하였고 16세 이후부터는 월경을 거르는 달이 많아지게 되었다. W양의 부모님은 그녀가 학생으로서는 월등하나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걱정스러워했다. 그녀는 친한 여자 친구도 별로 없었고 남자 친구와 데이트해 본 적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식사 문제에 대해서 다소 걱정하였지만 다른 문제는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태도는 진지했고 유머 감각은 없었으나 우울해 보이지는 않았고 사고장애는 없었다. 거식증의 첫 번째 진단기준은 자신의 나이와 키에 비해 체중을 최소한의 정상 수준이나 그 이상으로 유지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예로 나이와 키에 적절한 기대 체중의 85%보다 적은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서 체중을 감량하거나 또는 성장 기간에 예상되는 정상적인 체중의 증가에 실패하여 기대 체중의 85%보다 적은 체중으로 유지되는 것을 말한다(진단 기준 A). 이는 체중이 나이와 키를 고려하여 정상으로 간주하는 체중의 85% 이하인 경우는 정상보다 미달한 체중이라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지만,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일정한 나이와 키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표준으로 인정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저 참고되는 하나의 지침일 뿐이다. 또한 거식증이 아동기나 초기 청소년기에 발생하였을 경우는 체중이 감소하였다기보다는 발달과정에서 자라고 있는 키에 비례하여 예상되는 체중으로 증가하지 않은 상태라 볼 수도 있다. 둘째는 체중이 미달임에도 불구하고 체중 증가나 살찌는 것에 대한 강한 공포심이 보이는 경우이다(진단 기준 B). 거식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가지는 비만에 대한 극도의 염려는 실제 체중이 지속해서 감소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거나 더 심해진다. 따라서 가장 최소의 음식만으로 제한되는 극단적으로 절제된 식사를 하게 되고 설사약을 남용하거나 혹은 과도한 운동을 동반하기도 한다. 세 번째로 자신의 체중과 체형을 지각하는 방식에 장애가 있어서 체중이나 몸매가 자기 평가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거나 또는 현재의 체중미달에 대한 심각성을 부정한다(진단 기준 C). 즉 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일부는 자신들이 전체적으로 과체중이라고 느끼기도 하고 또한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어느 정도 말랐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신 자신들 신체의 특정 부분들, 특별히 배, 엉덩이, 허벅지 등이 너무 뚱뚱하다고 여전히 걱정한다. 따라서 지나치게 자신들의 체중을 재고 또한 신체의 부분들을 매우 강박적으로 측정하게 된다. 네 번째로 월경이 시작된 여성의 경우 초경 후에 적어도 3회 연속으로 월경이 없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데, 가령 에스트로겐 같은 호르몬을 투여한 후에만 월경이 나타난다면 무월경증이라고 간주한다(진단 기준 D). 무월경증은 극심한 체중 감소의 결과로써 거식증의 생리적인 기능 장애 하나의 표시가 되는데, 경우에 따라 초경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사춘기 이전의 여성들에게는 이 장애로 인해 초경이 더 늦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신체적 증상들에도 불구하고 체중 감소 그 자체를 전문가에게 호소하러 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오히려 거식증이 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자존감은 자신들의 체형과 체중에 심하게 좌우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체중의 감소는 자신들의 탁월한 성취와 엄청난 자기 통제로 인식되는 반면, 체중의 증가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자기 조절의 실패로 인식되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DSM에서는 좀 더 분명한 진단을 위하여 위와 같은 거식증의 증상을 나타내는 사람을 다음의 두 형태로 세분된 하위 유형의 하나로 분류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 하나의 형태는 제한형으로서 거식증의 일화가 현재 일어나는 동안 규칙적으로 폭식하지 않거나 또는 설사약을 사용하지 않는 거식증의 유형인데, 즉 스스로 구토를 유도하거나 설사약, 이뇨제, 관장약을 남용하지 않는 경우이다. 두 번째의 형태는 폭식 및 설사약을 사용하는 거식증의 유형인데, 즉 거식증의 일화가 있는 동안 현재 상태에서 규칙적으로 폭식하고 스스로 구토를 유도하거나 설사약, 이뇨제, 관장약을 남용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거식증이라 부르는 식욕부진증을 나타내는 영어 "anorexia"는 결핍을 뜻하는 "an"과 식욕을 의미하는 "orexis"라는 그리스어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름의 어원에서 암시하듯 거식증이라는 이름은 식욕에 대한 결핍 혹은 상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거식증이라는 용어가 식욕상실을 의미한다는 것만으로는 거식증에 대한 명확한 용어 해석은 아니라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Glen O. Gabbard는 식욕부진증이라는 말, 즉 anorexia가 잘못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거식증이라는 장애의 문제가 바로 식욕의 상실이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식증의 중요한 실제 문제는 식욕의 상실이나 결핍이 아니라 비만이나 체중이 증가한다는 것에 대한 극도의 공포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공복감을 통제하여 체중을 줄이려고 매우 과도하게 노력한다는 점이다. 위에서 제시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극도의 다이어트를 하고 난 후의 W양의 몸무게는 그녀의 신장을 고려해 볼 때 정상 수준보다는 낮은 체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도 비만에 대한 염려로 그녀는 여전히 다이어트를 계속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마른 몸매에 대한 왜곡된 지각으로 인해 자신의 체중미달에 대하여 별로 심각하게 느끼지도 않으며 게다가 무월경증의 증세도 보인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너무 과도한 다이어트의 결과 때때로 억제할 수 없는 식욕으로 인해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는 현상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W양이 보이는 양상들은 DSM의 기준들을 토대로 거식증이라 진단될 높은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이처럼 거식증을 가진 사람들은 식욕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음식을 섭취하지는 않지만 음식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많아서 흔히 요리법을 배우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이는 바로 자신들이 먹지 않게 되면서 가지게 되는 공복에 대한 고통과 결핍, 그리고 식욕에 대한 통제를 음식과 요리에 집중하면서 해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신들은 먹지 않으면서 때때로 음식을 몰래 숨겨두거나 모아서 저장해두기도 한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배가 고프다고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들이 배가 고프고 지쳐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강하게 부정한다. 따라서 치료의 필요성과 심각성을 인정하지도 않으며 더구나 체중이 주는 일과 먹지 못하는 일에 대하여 호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몸, 혹은 몸의 부분들이 너무 비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거식증을 가진 사람들은 여러 가지 심각한 신체적 증후를 나타내는데, 가령 변비, 복통, 추위를 견디는 내성이 떨어짐, 무기력감, 저혈압, 저체온, 부정맥, 빈혈, 신장 기능장애, 골다공증, 피부 건조증 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몸에 가느다란 솜털 같은 체모가 생기기도 한다. 게다가 의도적인 구토가 규칙적으로 유도될 경우 위산으로 인해 치아의 법랑질이 부식되며 구토를 유도하는데 손을 사용했을 경우 손등에 흉터가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들에도 불구하고 거식증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그다지 심각하지 않게 무시해 버리거나 치료에 대하여 강하게 저항한다. 그래서 거식증은 때때로 사망에도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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